성을 주제로 이야기하는 것이 이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 낯설지 않은 시대이다. 들끓던 '비아그라 열풍'이 어느 정도 가라않기는 했지만, 진료실을 찾는 많은 남성들이 '비아그라'를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처럼 느꼈던 것은 그만큼 아직도 자신 있는 성을 찾지 못하고 있는 남성들이 많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40대 초반의 자영업자 M씨. "요즘 부부관계를 한 달에 한 번도 갖기 힘들다. 마음은 20대 청춘이지만 몸이 마음과는 달리 움직여주지 않고. 잘 해보려고 애를 써도 뜻대로 되지 않고 갈수록 자신감만 떨어져..." M씨는 부인에 대한 불만도 털어놓는다.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잘 하지도 못하면서 귀찮게 한다'는 느낌을 받는 순간 남성은 금방 식어버린다. 나를 순식간에 바보로 만들어 버린다."
과거에는 남성우월주의에 의하여 철저하게 남성의 무능은 덮여져 왔고, 여성의 성이 무시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여성의 성적인 권리와 그 성의 기전, 그리고 여성의 성기능 문제에 대해서도 남성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최근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어 여성의 성충동과 만족의 과정은 아주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특히 남성과 달리 상대와의 정신적인 유대감이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성위주의 성행위에서 주로 비롯되는 여성의 성기능 장애에 관한 긍정적인 변화에 획기적인 발전이 있으므로 곧 여성에게도 밝은 세계가 열릴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남성의 기능조차도 여성의 성기능처럼 여성의 무관심과 빈정거림에 의하여 단숨에 넘어질 수 있는 고목이 될 수 있는 존재임을 많은 여성들이 알고 있을까?
남성의 특징이 원래 그러하듯이 남성의 성반응 기전 또한 단순해서 순간적인 부부간 교감의 파괴는 금새 남성을 바보로 만들 수 있다. 남성은 누구나 여성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한다. 그리고 여성의 기쁨의 순간에 더 큰 기쁨과 남성다움을 누리는 존재이다. 그런데 그것이 남성에게는 오히려 잘해보아야 하겠다는 불안감을 안겨주어 성기능 저하의 주범이 되기도 한다. 즉 이 불안감은 자기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는 자율신경계에 영향을 주게 되어 성조절기능이 악화되는 것이다. 이러한 남성의 심리를 이해하지는 못할 망정 남성의 불안감을 증폭시켜서는 아니 될 일이다.
아직도 부부관계에 있어서 솔직한 성의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점은 안타깝다. 잘못된 성지식이나 매체로부터 주입된 환상적인 성에 젖어 정작 자신이나 상대방에 대한 실망과 좌절에 휩싸이기 쉽상이다. 진정으로 서로의 몸을 이해하고 구석구석에서 서로를 쓰다듬어 주는 손길이 아쉬운 것은 그동안 너무 서로의 성에 대해서는 도외시 하거나(특히 남성이 그래왔지만) 또는 가르쳐주지 않는 성교육 문화로 인한 결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제는 모두 변해야 할 시대다.
한편 남성에게 큰 적은 스트레스다. 과도한 음주, 흡연, 운동부족으로 인한 비만. 그리하여 체형이 자꾸만 원시시대 유인원형으로 변해가는 고개 숙인 모습의 중년남성이 늘고 있다고 한다. 요즘 남성들은 갈수록 다양한 사회적인 관계에서 이 스트레스라는 피할 수 없는 운명에 직면하게 된다. 스트레스는 남성기능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스트레스를 받으면 대뇌의 뇌하수체에서 프롤락틴이라는 호르몬이 많이 분비된다고 한다. 이는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을 억압한다. 따라서 성욕이 떨어지게 된다. 한편 스트레스로 인한 자율신경계의 활성화로 오히려 남성은 오그라들고 수축하게 된다. 스트레스는 남성기능의 커다란 장벽이 되는 것이다.
40대 중반의 사업가 L씨의 호소. " 기운이 없다. 작은 일에도 쉽게 짜증이 나고, 쉽게 피로하고 우울해지고, 발기력은 떨어지고..."
우리의 몸은 끊임없이 흐르는 체액과 세포의 활동으로 무한한 힘을 발휘하지만 어느 시기가 지나면 그 속에 흐르는 성의 원동력이 줄어들게 된다. 여성들이여. 알고 있는가? 여성의 폐경기(menopause)가 존재하듯이 남성에게도 여성의 폐경기에 해당하는 남성갱년기(andropause: andro는 그리이스어로 남성이라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남성갱년기는 40대부터 빠르면 35세 경부터 시작되는 일조의 노화현상으로, 남성호르몬 즉 테스토스테론 감소로 인하여 신체적 변화와 더불어 정신 및 심리적 상태, 대인관계 및 사회생활 전반에 걸쳐 일어나게 된다. 남성호르몬은 남성을 남성답게 만들어 주는 호르몬이다. 이 호르몬의 부족으로 성기능이 감소하고, 근력감소, 골다공증, 복부비만 등의 체형의 변화 및 당뇨, 고지혈증과 같은 대사성 이상이 생길 수 있다. 심지어는 가슴이 여자처럼 튀어나오기도 한다.
이러한 남성갱년기의 원인은 첫째, 나이가 듦에 따른 노화현상. 둘째, 음주, 흡연, 비만, 스트레스 등의 환경요인. 셋째, 당뇨 등 만성질환과 같은 신체적 요인 등이다. 이러한 요인들은 남성호르몬의 분비 리듬을 깨게 되고 강도에도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신체적으로 피로, 식욕저하, 불면, 근력감소, 골다공증,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달아오른다. 또한 식은땀을 많이 흘리게 된다. 심적으로 예민해지고 과감하게 결단을 내리지 못하며 막연한 불안감 및 두려움을 가질 수 있다. 우울한 기분이 생기고 자신감 및 즐거움의 결여, 삶의 목적과 방향의 소실, 혼자이며 남들에게 사랑 받지 못한다는 느낌, 집중력이 저하, 건망증의 증가가 흔히 나타난다. 특히 성적증상으로 성욕과 흥미가 감소함으로써 발기장애를 유발하는 점이 주요한 문제다. 성행위에 대한 불안감 및 두려움, 성행위 도중의 발기문제, 성기능의 자신감 결여 등을 호소하게 된다.
이러한 남성갱년기와 여성갱년기와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일까? 공통점은 남녀 모두 갱년기가 되면 성호르몬의 감소로 신체적, 정신적 변화를 경험한다는 것이다. 남성갱년기시 나타나는 증상도 여성갱년기시 나타나는 증상들과 유사하며 이로 인하여 남성들도 갱년기로 인하여 신체적, 정신적 증상으로 고통을 받는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성갱년기와의 차이점은 우선 남성갱년기는 좀더 여성에 비해 이른 시기, 즉 30대 후반부터 40대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다는 것이 국내 비뇨기과 임상경험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또 하나는 생식능력의 차이. 즉 남성은 갱년기로 생식능력이 저하되기는 하지만 완전히 자식을 갖지 못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확연하게 경험할 수 있는 여성갱년기의 증상과는 달리 남성갱년기의 남성에게서는 남성호르몬의 점진적 감소로 갱년기 증상을 확연히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많으며, 증상도 개인차가 심하다는 점이 또 다른 차이점. 그래서 본인은 물론 같이 생활하는 주위 가족들도 인지하지 못하고 그저 그러려니 여길 수도 있기에 의사의 도움이 필요할 수 있다. 물론 성호르몬 감소로 인한 남성갱년기의 치료는 이미 탁월한 임상경험이 많이 축적되었다.
지금은 성의학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발전하여 성기능에 대한 실제적인 치료분야에서 과거와는 현저히 다른 대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어지간한 신체적인 변화라든가 심인성 변화에 의한 성기능 문제를 현대의학으로 해결할 수 있음은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역시 남성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부드러운 여성의 손길과 따스한 숨결이다. 남성의 떨어진 기. 성에 관한 무지와 오해. 대화의 단절. 낮에는 스트레스에 찌들고 밤이면 불안한 남성들. 게다가 연령증가에 따라 슬그머니 찾아오는 남성갱년기...
이제 이런 남성들을 다시 한번 뒤돌아보는 것은 어떨까.
남북대화의 물꼬가 터지고 있고 인터넷시대의 도래로 세계인의 장벽이 없어지는 시대이다. 며칠 전 평양을 거니는 북한 여성과 남성들의 모습에서 우리와의 성관념을 순간 비교해 보는 상념을 잠시 가졌지만 그들에게도 여전히 '여성과 남성'이라는 불멸의 주제와 사랑은 꺼지지 않는 불씨임을 의심할 수 없으리라. 누구나 아름답고 포근한 집에서 살기를 꿈꾸듯이 그 안에서도 진정으로 편한 휴식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 중에서도 성이라는 주제는 언제나 아름다운 집의 한가운데에 놓여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면 필자의 억측일까?
미래의 디지털 시대의 사이버섹스가 난무하더라도 끊임없는 진실한 성의 추구는 단절된 우리의 뇌세포를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고, 다가올 사이버 도구들로부터 우리 인간을 지켜 줄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강남가드비뇨기과 원장이 공간사랑 잡지에 쓴 기고입니다.